유럽역사

고대 로마의 역사

청락더락 2020. 3. 30. 18:00

기원전 6세기 말 왕을 에트루리아로 쫓아버린 로마 귀족들은 공화정을 수립하였으며 귀족 지배는 평민의 투쟁에 의해 여러 차례 위기에 처했엇지만 원로원의 지도하에 타협하여 결국은 귀족 지배를 강화하는데 성공하였으며 한편으로 밖으로 눈을 돌리면 기원전 5세기에서 기원전  4세기에 에트루리아의 세력은 여전히 강하였으며 또 아펜니노 산맥의 아에퀴인과 볼스키인의 평지 진출도 격심하였으며 기원전 5세기의 로마는 방어전에 힘쓰다가 5세기 말에 이르러 공세로 전환했으나 직후 갈리아인으로부터 큰 타격을 받았고 타격과 신분 투쟁을 수습하게 되자 기원전 4세기 후반에 라티움의 도시들과 싸워 이들을 굴복시켰으나 단순한 종속은 아니었으며 로마가 삼니움과 에트루리아 그리고 남이탈리아에 세력을 확장할 때 라티움의 도시들이 공동 출병하고 정복한 도시들로부터 빼앗은 영역에 역시 공동으로 라틴인식민시를 세웠습니다.  제2차 포에니 전쟁에 의해서 최초의 해외령인 시칠리아섬을 얻음으로써 로마의 국정이 크게 변화하였으며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 때문에 몇 번이나 위기에 직면한 제2차 포에니 전쟁을 치르고 난 뒤부터는 본격적인 지중해 진출이 시작되었으며 마케도니아를 격파하고 그리스를 보호함으로써 동지중해를 석권했지만 로마의 내부에는 위험한 조건이 쌓이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전쟁 노예의 유입과 토지 겸병에 의한 대농장 경영이 진전하여 로마를 뒷받침하여 왔던 중장보병인 자유농민이 격감한 것이며 또 하나는 이에 대한 해결책을 싸고 지배층 사이에서 의견이 대립한 것이며 그라쿠스 형제의 사회 문제에는 유효했으나 정치적으로는 내란을 유발하였습니다. 

제1차 포에니 전쟁은 카르타고와 로마 사이에 벌어진 세 번의 포에니 전쟁 가운데 첫 번째 전쟁이며 23년 동안 두 세력은 서부 지중해 패권을 놓고 전쟁을 하였으며 전쟁의 결과 로마가 승리하였고 그리하여 카르타고에 불평등 조약을 체결하고 막대한 전후 배상금을 부과하였으며 제1차 포에니 전쟁 이후 6년간 로마는 팽창을 거듭하여 지중해 대부분을 장악하였습니다. 전쟁 전 로마는 이탈리아 반도 전역을 카르타고는 지금의 알제리와 튀니지를 중심으로 에스파냐 시칠리아 절반 사르데냐 섬을 장악하던 나라였으며 시칠리아는 카르타고와 로마 중간에 위치하여 이 곳을 다른 쪽에 내주면 적을 코앞에 두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제2차 포에니 전쟁 또는 한니발 전쟁은 기원전 218년부터 기원전 202년까지 로마 공화정과 카르타고 사이에 벌어진 일련의 전쟁을 말하며 카르타고의 장군 한니발과 로마의 대결이라는 점에서 한니발 전쟁으로도 부르며 이 전쟁에서 로마 공화정은 초기에는 명장 한니발에 밀려 이탈리아 본토까지 침략당하였으나 끝내 역전에 카르타고를 꺾고 지중해 서부의 패권을 차지하였습니다. 제1차 포에니 전쟁이 긑나고 카르타고는 시칠리아에 대한 주도권을 상실하고 로마에 막대한 배상금을 물어주어야 했고 전쟁에 참가한 다른 나라 용병들의 급료도 지불해야했으며 카르타고에게 상당한 압박으로 작용하여 급기야 기원전 240년 급료에 불만을 품은 용병들이 반란을 일으켰으며 용병의 출신 국가들과 카르타고내의 반 카르타고 세력과 결합하여 거의 3년 4개월을 끌고서야 해결되었으며 그 와중에 로마는 사르데냐와 코르시카에 대한 지배권을 얻었으며 한편으로 카르타고의 하밀카르 바르카는 용병의 반란을 진압하고 해외로 눈을 돌려 히스파니아로 이주하고 본격적인 히스파니아 식민지 경영에 착수했고 기원전 228년에는 히스파니아 동쪽에 새 카르타고를 세우고 자신의 바르카 가문의 중심지로 삼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