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동지중해
황하 유역이 이 시한의 시초에 겨우 역사시대로 들어섰으며 이후 서주를 거쳐 춘추시대의중엽까지이고 그 기간은 전형적인 청동기 문명이나 조형의 예술성에서는 선행의 은시대의 것이 후속의 주시대보다 오히려 뛰어났습니다. 주의 역사는 은과 마찬가지로 지극히 전설적으로 후세의 여러 전적에 전해지고 있으나 구체적인 실증적 사료는 거의 남겨져 있지 않았으며 다만 서주 사회가 원시 씨족공동체인 강점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것만은 분명히 인정되었으나 기원전 9세기 무렵부터 내부적 모순이 고조되어 쇠퇴했습니다. 기원전 8세기 후반에는 드디어 외적의 침입에 대항하지 못하여 수도를 잃고 주나라 왕실은 동으로 달아나 겨우 명맥을 부지하였습니다. 오리엔트에 있어서는 당초부터 이집트 세력의 후퇴가 현저하며 히타이트도 기원전 12세기에 멸망하였고 그러한 일반적 정서에서 이 시기에는 많은 중소 세력이 주변 및 외곽 지역에 성립되었으며 가장 빨리 외측에 그리스인의 미케네 세계가 오린엔트의 지중해 영역에는 페리 시테 이스라엘 등의 소국가군이 이어 페니키아 여러 도시가 내륙에서는 메소포타미아 북부의 아슐이 가장 문제가 됩니다. 기원전 8세기 후반에 이르러 정세가 일변하며 즉 아시리아에 의한 전오리엔트 정복입니다. 이집트가 메소포타미아의 세력에 지배, 규합된 것은 그때를 효시로 삼으나 아시리아는 그의 통일에 알맞은 대영역 유지를 위한 조직적 행정을 만들어 내지 못했습니다. 단순히 폭력에 조급한 대제국의 성립은 일종의 파행현상에 불과하며 따라서 이 대제국은 순식간에 영역적 블록으로의 복귀, 해체의 작용을 일으켜 싱겁게 멸망해 버렸습니다. 유럽계 아라아인이 점차로 원주민과 혼혈해 가면서 또한 후자를 정복하면서 기원전 10세기까지에는 갠지스강 방면으로 진출하고 전 7세기경에는 북인도의 여러 소국을 통합하여 전설에 의하면 16개 왕국이 성립했다고 하지만 고대 초기의 인도에는 연대를 명백히 한 역사 기술이 전혀 없기 때문에 그 동안에 있었던 그들의 역사적 경과를 정화갛게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였습니다. 카스트 제도도 그 기원은 처음에는 피정복 원주민에 대한 색의 구별로서 정복형 노예제도를 강행하기 위하여 시작되었으며 이 노예적인 신분 질서의 이데올로기화와 동시에 제1신분인 브라만의 지배 계급을 영구히 보존하는 것은 브라만교였습니다.
기원전 2000년대 초기의 오리엔트에 있어서의 민족 이동의 여파는 이 지방에도 현저한 영향을 주었으며 후르리 미탄니 왕국의 건설, 힉소스의 침입, 히타이트의 북시리아 지배 그리고 이집트 신왕국의 시리아 진출 이러한 일련의 사건을 통하여 이 지역은 항상 큰 나라의 침략 대상이 되었습니다. 알라라크는 히타이트에 정복되었으며 우가리트는 기원전 1370 기원전 1360년경에 있었던 대지진에 의해 명망되었으며 아마르나 시대를 맞이한 이 지역은 이집트나 히타이트의 보호 아래 비블로스 등의 무역항으로 번영하였습니다. 페니키아라고 불렸던 시리아 연안의 서 섬계의 여러 도시는 공전의 번영을 이룩했으며 시돈, 티루스 등은 키프로스섬 크레타섬 아프리카 연안 에스파냐에까지 식민지를 건설하였습니다. 한편 기원전 2000년말부터 섬계의 아람인이 북시리아에 소국가를 세워 마침내는 시리아 전역을 아람화시켜 버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