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역사

중국의 중세사와 근대사

청락더락 2020. 4. 6. 13:06

오대십국 시대는 화북의 정권을 다투던 5개의 대국과 나머지 10개의 소국이 혼재했던 시기이며 5대 10국의 혼란을 수습하고 송이 다시 중원을 통일하였으며 세계 최초로 지폐를 발행하였으며 중국 역사상 최초로 상비 해군을 창설하고 문화 정치를 펼친 왕조이기도 하며 이 시기에는 쌀과 보리의 이모작이 확대되었으며 예술, 사상, 및 각종 실용기술의 발달이 두드러져 문화적으로 풍요롭던 시기였으나 내몽골 지역과 만주 지역을 차지한 거란족이 세운 국가인 요에 의해 베이징 이북의 많은 지역을 빼앗기고 요나라와 서하에 사실상의 조공을 납부하며 별 위세를 떨치지 못하다가 요나라의 지배하에 여진족이 요나라를 정복하고 세운 금에게 화북 지방을 빼앗기고 멸망하였습니다. 이때까지를 북송 시대라고 하고 이후 북송의 황실을 계승한 왕조를 남송이라 합니다. 몽골 제국과 함께 금나라를 멸망시키는 데에는 성공하지만 몽골 제국을 계승한 원나라에 의해 멸망하였습니다. 

원은 만주, 중앙아시아, 서남아시아, 동유럽까지 지배한 몽골 제국의 적장자인 쿠빌라이 칸이 몽골고원, 만주, 화북력들을 아우르는 지역의 한족식으로 세운 국가로 남송을 멸망시키고 중국 본토를 장악하게 되었으나 주원장이 원나라를 몽골 고원으로 몰아내고 명이라는 한족 왕조를 건국하였습니다. 초기에는 외국과 교류하며 선진 문물을 과시했으나 후기로 갈수록 임진왜란 등 외부 원정의 부담과 무노하 침체로 쇠퇴하다가 사르후에서의 패배와 숭정제의 실책으로 멸망하였습니다. 명나라의 몰락을 틈타 금나라의 후예인 만주족이 후금을 세워 중국을 다시 통일하였으며 청은 후금을 계승한 왕조로 초기에는 한족을 정책적으로 차별햇으나 전체적인 제도 및 왕조의 분위기는 명나라와 유사하였습니다. 양무 운동을 통해 근대 국가 진입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고 서구 열강 세력들의 이권침탈이 심화되면서 더욱 더 쇠퇴하고 1912년에 신해 혁명으로 멸망합니다. 청나라 소조정이 1912년 부터 1924년 까지 유지되었지만 결국 붕괴되었으며 그 사이에 청나라 복벽사건이 일어나서 1917년 7월 1일 부터 청 황조가 복벽되었으나 1917년 7월 12일에 끝을 맺었으며 한편 남명은 멸망당한 명나라의 왕실을 계승한 나라로 명의 부흥을 기도하였으나 청나라에 망하였으며 남명의 신하였던 정성공은 타이난으로 건너가 정씨왕국을 설립하여 청나라에 대항하지만 3대째에 복속당합니다. 

중화민국은 신해혁명의 성공으로 수립된 아시아 최초의 공화제 국가이며 각 지방의 실력자들이 군벌로 등장하였습니다. 특히 위안스카이는 자신이 거느리는 북양 군벌을 이끌고 쑨원으로부터 대총통 자리를 넘겨받았으며 위안스카이가 1916년 사망하자 이후 그의 부하들이 할거했는데 대표적으로 안휘파의 돤치루이, 직예파의 펑궈장, 차오쿤, 오패부, 봉천파의 장꿔린, 산시파의 옌시산 등이 중국 각지에서 할거하였습니다. 한편 주오하민국 최초의 공화정 체제인 북양 정부는 1928년까지 존속했으며 북벌이 재개되고 모든 세력이 장제스가 이끄는 중국 국민당 수중으로 들어왔으며 난징을 수도로 하는 중국 국민당 주도의 국민 정부가 집권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