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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공화정2

중세의 역사 한때 지중해를 우리의 바다라 호언하던 로마도 3세기 말에 이르자 디오클레티아누스 호아제의 필사적인 재건 개혁도 헛되이 쇠퇴 일로를 걸었으며 인구는 감소되고 경제는 굳어 실물 경제화햇으며 토지는 일부 대토지 소유자에 독점되어 자유 농민과 중간층은 몰락하였을 뿐만 아니라 왕년에 막강함을 자랑하던 로마군이 게르만 용병으로 채워져 무력화하고 결국에는 475년 서고트족이 동로마의 국경을 침입하자 사상 유례가 드문 일대 민족 이동을 유발하고 말았습니다. 제일 먼저 국경을 침입한 서고트족은 아드리아노플 전투에서 동로마군을 격파와 콘스탄티노플을 위협했고 서진하여 서로마군을 격퇴하고 이탈리아 반도로 남하했습니다. 결국 410년 영원의 도시 로마가 함락되고 잇따라 게르만의 여러 부족들이 로마의 다른 영토를 유린하였으며 게.. 2020. 3. 31.
고대 로마의 역사 기원전 6세기 말 왕을 에트루리아로 쫓아버린 로마 귀족들은 공화정을 수립하였으며 귀족 지배는 평민의 투쟁에 의해 여러 차례 위기에 처했엇지만 원로원의 지도하에 타협하여 결국은 귀족 지배를 강화하는데 성공하였으며 한편으로 밖으로 눈을 돌리면 기원전 5세기에서 기원전 4세기에 에트루리아의 세력은 여전히 강하였으며 또 아펜니노 산맥의 아에퀴인과 볼스키인의 평지 진출도 격심하였으며 기원전 5세기의 로마는 방어전에 힘쓰다가 5세기 말에 이르러 공세로 전환했으나 직후 갈리아인으로부터 큰 타격을 받았고 타격과 신분 투쟁을 수습하게 되자 기원전 4세기 후반에 라티움의 도시들과 싸워 이들을 굴복시켰으나 단순한 종속은 아니었으며 로마가 삼니움과 에트루리아 그리고 남이탈리아에 세력을 확장할 때 라티움의 도시들이 공동 출병하.. 2020. 3.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