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역사14 화화강 사건에 관하여 화화강 사건은 1911년 4월 27일 중국 동맹회가 광저우에서 일으킨 반청 무장봉기를 말하며 72열사 사건, 신해광저우 봉기하고도 합니다. 1910년 11월 13일 손문은 빈랑위에서 비밀리에 광저우 봉기 계획을 의정하고 손문 자신은 모금활동을 계속하기 위해 외유하였으며 1911년 1월 황흥 및 조성 등은 홍콩에서 통주부를 세웠습니다. 그 해 4월 초순 제1회 분의 무기로서 일본에서 권총 115정과 총탄 4천발이 도착될 예정이었으나 이를 운반하는 책임자가 모지까지 왔다가 홍콩에서 검사가 철저하다는 소문을 듣고 그 소중한 무기를 바다에 던져 버렸습니다. 후속분은 예정대로 순조롭게 홍콩에 도착했으며 도착한 무기는 극비리에 광저우로 운반될 예정이었으나 광저우에서 동맹회원 오생재의 테러 사건이 일어나 경계가 매우.. 2020. 7. 27. 청조의 대응과 위안스카이의 등장 우창 봉기에 이어 호남, 섬서, 강서, 산서, 상하이, 절강, 광둥 등 여러 지역에서 동맹회 회원들이 우창 봉기에 자극받아 일제히 봉기하여 11월 하순에는 24성 가운데 14성이 청조의 지배로부터 이탈, 독립하게 됩니다. 청나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각 성은 통일 혁명중앙정부의 수립을 위해 각성도독부대표연합회 각성대표회의 등을 만들었으나 이들의 혁명과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중국동맹회 등 통일된 혁명세력이 각 서의 무장봉기에 가담하여 봉기를 일으킨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주체적이고 일률적인 규율이나 지도체제가 없었습니다. 일단 청조와 구체제에 반대하기만 하면 입헌파든 공화파든 가리지 않고 무장봉기에 나섰기 때문에 봉기가 성공하여도 실제 지배권은 입헌파등 반동세력이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한편 베이징의 .. 2020. 4. 28. 보로운동의 확산과 쓰촨 폭동 청조는 1898년 이래 철도부설권과 광산채굴권 등 막대한 이권을 외국인의 손에 넘겨주어 이 시기 철도 부설 운동이 크게 일어났으나 민간에서 이권 회수 운동이 일어나 철도도 스스로 자금을 마련해서 부설하자는 운동이 일어났으며 특히나 호남, 호북, 쓰촨, 광둥에서 적극적으로 이 운동이 일어나 주식을 판매하여 자금을 모아 건설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모은 자금에는 한계가 잇었기 때문에 철도 부설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1911년 5월에 청 조정은 신정의 일환으로 새로운 내각을 구성하고 13명의 각료를 임명했으나 문제는 이 13명의 각료 중 한족 출신은4명뿐이고 나머지 9명은 만주족이었으며 그 9명 중 6명은 황족이었기 때문에 개혁의 기대를 완전히 저버린 내각인사였으며 더 커다란 문제는 이 내각에서 우.. 2020. 4. 28. 중국 혁명의 주요 사건 혁명 봉기가 실패를 거듭하자 입헌파의 기관지 신민총보와 동맹회의 기관지 민보까지도 혁명파의 수령들은 편안히 앉아 있기만 하고 애매한 대중만 죽음에 몰아넣었다고 비난을 퍼부었으며 동맹회 기관지 민보의 격렬한 비난에 분통을 터뜨린 왕조명은 민보의 보도가 잘못이라는 실증을 보여주기 위하여 베이징으로 달려갔으며 혁명 투사들뿐 아니라 자신도 혁명을 위하여는 목숨을 바치겠다는 결의를 보이기 위해서였습니다. 베이징에 올라온 왕조명은 웅성기가 하얼빈에 암살하려다 실패한 바 있는 두 황족을 베이징 도착 때 폭살할 계획을 세웠으나 두 황족이 베이징에 도착했을 때는 많은 출영 인파로 그들을 분별할 길이 없어 예정을 변경하였습니다. 왕조명은 섭정왕인 순친왕을 폭살할 계획으로 순친왕이 자주 통과하는 다리 밑에 폭탄을 장치하였으.. 2020. 4. 6. 이전 1 2 3 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