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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역사

근세의 역사

by 청락더락 2020. 3. 30.

근세는 서양의 중세와 근대 사이의 시기며 이를 다시 근세와 근대로 나누기도 하며 근대는 대개 영국 산업혁명 이후부터 20세기 초반까지를 가리키며 근세는 그 이전을 일컫기도 합니다. 서구의 중세 보건사회는 로마 교회의 교황을 정점으로 하는 강력한 정신적 공동체로 그 명맥을 이어왔으나 수차례에 걸쳐서 감행된 십자군 원정 이래 로마 교회의 권위와 위신은 땅에 떨어지고 말았고 그 외 십자군 운동은 직접 혹은 간접으로 상업의 부활과 도시의 발달을 촉진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상업의 발달은 화폐의 통용을 가져왔고 화폐경제의 대두는 필연적으로 농업을 주로 하는 봉건사회 내부에 변화를 일으켰으며 봉건지대의 금납화 과정이 도처에서 실시됨으로써 장원제를 서서히 해체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습니다. 한편 정치적인 측면에서는 15,16세기 유럽을 개관해 보면 소위 근대적 국민국가가 탄생한 시기이기도 하며 영국은 프랑스와 백년전쟁을 하는 동안 싹이 튼 강렬한 민족의식을 바탕으로 국민들의 의지를 하나로 묶을 수가 있었으며 봉건제후 사이에 벌어졌던 장미전쟁을 계기로 왕권을 강화시키는데 좋은 기회를 얻을수 있었기에 튜더 왕조가 성립되었습니다. 

튜더 왕가 또는 튜더 왕조는 잉글랜드 왕국과 아일랜드 왕국을 다스렸던 다섯 명의 군주들을 배출한 집안을 말하며 전반적으로 튜더 출신 군주들의 통치 덕분에 그전까지 유럽의 바다 건너 약소국이었던 잉글랜드는 훗날 세계를 석권하게 되는 대영제국으로 전환될 수 있었으며 특히 문화사 방면에서는 엘리자베스 1세의 치세기간은 특별히 엘리자베스 왕조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헨리 7세는 백년전쟁과 장미전쟁으로 인해 피폐해진 나라를 바로세우기 위해 귀족들을 억압하고 절대왕정을 추진하였으며 해외 진출에도 적극적이었는데 이러한 그의 정책은 헨리 8세, 에드워드 6세, 제인 그레이, 메리 1세, 엘리자베스 1세에게 그대로 계승되어 튜더 왕가의 전성기를 쌓아올렸으나 엘레자베스가 후사 없이 서거하자 혈통이 단절되었습니다. 그래서 헨리 7세의 피가 흐르는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가 잉글랜드의 제임스 1세로 즉위하여 스튜어트 왕가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를 아울러 통치하게 되었습니다. 

15-16세기는 정치와 경제면만의 변혁기가 아니었고 정신적으로도 커다란 혁명을 일으킨 시기이기도 하며 서양 근대문화의 모체가 된 문예 부흥 운동은 인간의 정신활동 모든 분야에서 전개되었지만 그 중심 사상은 특히 미술과 문학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르네상스의 근본정신은 현세를 존중하는 인간중심적인 사고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는 십자군 운동 이래 동방무역의 중심지가 되어 부의 축적과 병행하여 외부로부터 정신적인 영향을 어느 국가보다 먼저 받았으며 14세기 중엽 이탈리아에서 르네상스 운동이 발흥하였고 16세기 중엽까지 전성기를 구가하였습니다. 한편 16세기초엽 독일에서는 인문주의자와 신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중세 로마 교회의 미신적 교리와 교권에 항거하고 초대 교회의 정신으로 복귀하기 위한 개혁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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