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431년 이제까지 대립만을 지켜오던 아테네 맹주의 델로스 동맹과 스파르타 맹주의 펠로폰네소스 동맹이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일어났으며 아테네는 개전했을때 우세했으면서도 2년후 페스트가 유행하고 유능한 지도자 페리클레스를 일어 전제가 역전되었으며 아테네는 국부적인 승리에 따라 강화를 맺을 기회가 있었으면서도 모두 놓쳤으며 기원전 404년 스파르타에 항복하였으며 폴리스 세계의 정정 불안과 모든 모순이 일시에 드러나서 또다시 전쟁을 초래하였으며 에파메이논다스의 새로운 전법에 의한 밀집 진형이 효과를 발휘하여 기원전 371년 레우크트라의 일전으로 그리스의 패권은 테베로 옮겨졌습니다.
델로스 동맹은 페르시아의 재습격에 대비할 것을 명분으로 하여 기원전 477년의 봄 아테네를 맹주로 이오니아나 아이올리스 그리고 에게 해의 여러 섬에 있는 폴리스가 가맹하여 결성된 동맹이며 이 목적을 위해서 가맹 각국은 군함과 수병을 제공하든가 공부금으로 대납하든가 하는 의무를 졌습니다. 많은 가맹국은 안일을 구하여 후자를 택했으므로 결국 아테네가 이들 동맹군 자금을 사용하여 군비를 부담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으며 그리하여 아테네의 무력은 한층 더 강대해지고 후일 그 때문에 제국주의화하는 계기를 주게 됩니다. 공부금의 사정이나 징수하는 동맹 재무위원이 아테네 시민에서만 선출하도록 되어 있던 예에서도 볼 수 있듯 원래 아테네 익찬적 체제였지만 처음에는 명칭대로 에게해 중앙 델로스 섬에 두고 있던 동맹 금고를 기원전 454년에 아테네에 옮기고서는 아테네는 이를 더욱 노골적으로 사물화해 갔습니다. 펠로폰네소스 동맹은 고대 그리스의 스파르타를 맹주로 하는 펠로폰네소스 반도 도시국가들의 군사동맹이며 기원전 6세기 스파르타가 무력으로써 개별적으로 여러 도시국가의 군사 조약을 체결하여 기원전 500년까지 아르고스를 제외한 전 펠로폰네소스를 통합하는 도시 동맹으로 조직되었습니다. 펠로폰네소스 동맹을 아테네를 맹주로 하는 델로스 동맹에 반기를 드는 세력이었는데 펠로폰네소스 동맹과 델로스 동맹은 기원전 431년에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치렀고 이 전쟁에서 펠로폰네소스 동맹이 승리하면서 그리스의 패권을 스파르타가 갖게 되었습니다. 이미 펠로폰네소스 전쟁 중에 스파르타는 자기 함대의 급양 자금을 페르시아에서 원조받는 그리스 민족에 대한 배반 행위를 하면서 전쟁을 했는데 폴리스 세계는 페르시아에 의해 얕보여 이 때부터 금력에 의한 페르시아의 내란 개입이라는 간단하지 않은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전란에 의한 토지의 황폐와 집중 중산 시민의 몰락 끝없는 전쟁과 망명의 반복 그리고 이들은 폴리스의 시민사회를 근저로부터 파헤쳐버려 시민군 체제의 붕괴를 초래하게 되지만 이와 같은 사태는 따로 임금을 목적으로 하는 용병들을 대량으로 만들어냈습니다. 크세노폰의 아나바시스 등에서 볼 수 있듯이 그들은 필요에 따라 어느 곳에서나 싸웠으며 페르시아의 왕이나 사트라프에게도 사용되는 자가 부지기수였습니다. 페르시아로서는 폴리스 세계의 분열 항쟁만이 목적이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한쪽에서는 스파르타와 통하고 동시에 아테네 테베를 원조하여 예를 들면 코린트 전쟁과 같은 폴리스 사이의 전란을 조장하고 그 결과인 안탈키다스 화평 조약에 있어서는 페르시아 대왕의 칙명에 그리스인끼리의 전투가 정전되기까지 하였으며 결과적으로 소아시아 연안의 그리스의 여러 폴리스는 완전히 페르시아 영토화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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