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의 유럽 여러 국가는 절대주의적 전제정치 체제를 바탕으로 하는 중앙집권적 근대 국민국가를 건설함으로써 중세 봉건국가 체제로부터 벗어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절대주의 체제란 서구의 중세 봉건 사회가 붕괴되기 시작한 이후부터 근대 시민 사회가 형성되기 전까지에 있었던 과도적 전제형의 정치체제를 의미하며 이 시기에 있어서 가장 전형적인 절대주의 국가는 에스파냐를 비롯한 영국과 프랑스였습니다. 에스파냐는 펠리페 2세의 통치기에 발생한 네델란드의 독립 전쟁을 계기로 국제적으로 위신이 실추되었고 영국은 16세기의 튜더왕조를 거쳐 왕권을 강화하고 스튜어트 왕조의 제임스 1세에 이르러서는 유럽 여러 국가의 절대군주의 표본으로 군림하였습니다. 스튜어트 왕가는 14세기부터 스코틀랜드의 왕실이었고 17세기부터는 영국의 왕실이었으며 스코틀랜드의 최고궁내관직의 별칭에서 가문의 명칭이 유래했습니다. 이 시대는 근대 영국의 내분시대이지만 이때 민권확립이 촉진되고 해외진출의 기준이 고조되었으며 스코틀랜드 왕인 제임스 1세의 잉글랜드 왕 즉위로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결합하게 되어 대브리튼 왕국의 기초가 확립되었습니다. 청교도 혁명을 거쳐 1649년 1월부터 1660년 5월까지의 왕조는 일시 중단되었으며 왕정복고로 찰스 2세 및 그의 동생 제임스 2세가 왕위에 올랐으나 가톨릭 보호자였기 때문에 명예혁명때 내쫓기고 그 대신 네델란드 총독 윌리엄과 제임스 2세의 딸 메리가 영국을 공동 통치하게 되었습니다.
왕권신수설은 절대왕정을 뒷받침하는 정치 사상이었으며 한편 프랑스는 루이 14세를 맞아서 국왕의 권력이 견고해졌으며 총신 콜베르는 중상주의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였으며 이로 인하여 왕립과 국립의 특권인 매뉴팩처나 적극적 무역 정책이 전개되었습니다. 국왕은 또한 자신의 권력 유지와 강화를 위해 상비군이 필요하였고 동시에 자신을 보좌하는 관료가 요청되었으며 이를 위해 국왕은 막대한 경비를 지출하였는데 그것을 충당하기 위해 새로운 조세제도를 채택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조세제도가 대내적으로 국왕의 재정을 해결하기 위한 한 가지 방안이었다고 하면 중상주의 정책은 대외적으로 이를 타개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중상주의 정책은 전세기에 발견된 미국의 신대륙을 위시해서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과의 교역으로 인해 수행이 가능했던 것이며 식민지 개척을 위하여 영국은 1600년에 그리고 네델란드는 1602년에 각각 동인도회사를 설립하여 초기 자본주의를 육성하기 위한 소지를 닦아 나갔습니다. 영국은 이미 엘리자베스 여왕의 치세하에 국내의 산업과 무역의 보호를 위해 외국상인들의 국내 호라동을 제한하고 영국상인에 한해서만 무역의 독점권을 부여했습니다. 당시 해외무역에 종사하던 상인들은 대다수가 신흥 상인들이었으며 그들은 시대의 조류와 정치정세의 변화에 재빨리 적응하면서 의회에까지 그들의 세력을 뻗쳤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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